어린 백성을 어엿비 여기사(프리랜서 강사)
정은오 | 조회 746
어린 백성을 어엿비 여기사
정은오(프리랜서 강사)
내가 알고 있었던 훈민정음은 나랏말쌈이로 시작되던 몇 구절의 암기가 전부였다. 수십 년을 글공부를 해왔고 시와 수필을 쓰는 작가로 묘사를 위한 언어의 조탁을 늘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아동 센터에서 독서토론과 논술, 동시 쓰기 등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한 지가 15년이 넘었고 청주시 직지 사업의 일환인 1인 1책 강사로 성인들의 글쓰기 가르치면서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글,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지 이론과 실기를 강의했다.
그러나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과 묘사의 미묘함을 문장을 통해 나누고 가르치며 감탄하였지만 정작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과 원리, 뿌리 등을 알지 못했고 설명하지 않았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훈민정음 해설사 교육은 새로운 학문으로 설렘으로 다가왔다.
사단법인 훈민정음 기념사업회에서 국민 모두에게, 세계에 훈민정음을 바르게 알려 주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훈민정음 해설사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저하지 않고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받으면서 너무나 무지했던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원리와 뿌리를 공부하게 되었다. 훈민정음에 대한 애정도 없이 글쓰기를 가르쳐 왔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 가장 기본적이라도 수강생들에게 먼저 알려야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였고 기초부터 차례를 정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내면의 정서적 문제일지 한국인의 핏줄 때문일지 훈민정음 하면 절대 잊지 않고 입안을 맴도는 것이 있었다. ‘어제서문’이었다.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 내〮이〮ᄅᆞᆯ〮為윙〮ᄒᆞ〮야〮어〯엿비〮너겨〮 /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 / 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언제든 이 훈민정음 어제서문을 입안에서 웅얼웅얼 외워보면 괜스레 가슴 한쪽이 찡해 온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드실 때 얼마나 깊은 고심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세종대왕이 못 배우고 가난한 백성들을 얼마나 어엿비 여기셨는지 그 정이 사무치게 느껴지는 기록이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조정 대신들의 반대 상소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백성을 어엿비 여기신 세종대왕의 애민 사상이었다.
훈민정음 창제원리가 과학적이고, 비유적이고, 철학이 담긴 위대한 문자라는 것을 공부하게 된 후 이를 지켜내고 소중하게 간직해 준 간송 전형필님의 높은 안목에 후손으로서 천배, 만 배를 드려도 그 감사한 마음이 어찌 그 큰 뜻에 미치리오.
⌜비록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이던지 닭 울 음소려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정인지 서문 일부>라고 기록하고 있다.
28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 무궁한 문자들을 살펴보자.
색을 나타낸 문자를 보면, 파랗다, 파르스름하다, 퍼렇다, 시퍼렇다, 새파랗다, 파랑과 노랑의 중간 빛인 초록이 있다. 연초록, 진초록, 연둣빛, 빨갛다, 시뻘겋다, 시뻘겋다, 새빨갛다, 새빨갛다, 발그스름하다, 불그레하다, 불그죽죽하다, 발그레하다,
까맣다, 꺼멓다, 시꺼멓다, 새까맣다, 접두사 시, 싯, 샛, 새 가 들어가면서 미묘한 색감의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따뜻하다, 뜨겁다, 따스하다, 따사롭다, 차다, 차갑다, 겨울 날씨가 꽁꽁 얼어붙었다가 따뜻해지면 ‘풀린다’라고 말한다. ‘푹하다’ ‘아늑하다’ ‘으늑하다’ 봄볕이 툇마루에 비치면 햇살이 ‘따사롭다’라는 표현을 한다. 이보다 조금 어감이 여린 말이 ‘다사롭다’이다. ‘다습다’도 있고 ‘따습다’도 있다. 봄 햇살을 표현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다사롭다’라는 햇볕뿐만 아니라 마음을 이야기 할 때도 쓰는 말이다. 마음이 ‘따사롭다’ ‘다사롭다’ ‘따습다’라는 말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후덥지근하다’ ‘후덥다’ 후텁지근하다‘ ’후터분하다‘ 너무 더우면 ‘무덥다’라고 표현한다.
‘바람이 서늘하다’ ‘상크름하다’라는 바람기가 좀 선선하다는 뜻이다. ‘성크름하다’는 좀더 선선해지는 표현이고 ‘살랑하다’가 있고 ‘쌀랑하다’는 좀 더 추운 듯할 때 쓴다. 이보다 큰말이 ‘썰렁하다’가 있다. 이 ‘썰렁하다’ ‘싸늘하다’ ‘쌀쌀하다’ 온도만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할 때도 쓰이는 비유적인 말이다.
날씨가 강하게 추운 날은 ‘고추처럼 맵다’라고 말한다. 매운맛은 음양오행에서 火로 뜨거운 기운인데 극과 극의 대비로 비유적으로 쓰인다. ‘맵짜다’ ‘맵차다’는 추위가 맵고도 차다는 뜻이다. 맵차다는 마음이 모질고 차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 문자는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이렇게 작고 미세한 느낌을 포착하여 표현의 섬세한 차이를 통해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유적 언어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함께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나 위대한 문자인가! 그 뿌리가 바로 훈민정음이다.
이런 전차로 이제 교육받은 해설사들이 세종대왕의 뜻과 훈민정음의 위대함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니 얼마나 역사적이고 가슴 뿌듯한 일인가.
지금은 아직 실행되지 못하고 있지만 여러 방면으로의 노력의 결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일은 우리 민족이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역사적인 이 큰 사업의 길에 참여하고 나름대로 역할을 하게 된다면 참으로 기쁜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글공부를 놓지 못했던 것은 이 일을 하기 위한 운명적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초정약수 축제가 초정 행궁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첫 번째 내가 바라는 것은 초정 행궁 한 채를 훈민정음 방으로 만들어 세종대왕 영정과 훈민정음 어제서문, 해례본, 정인지 서문, 그 밖에도 사단법인 훈민정음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을 게시하고 세종대왕이 실제로 초정에 얼마 동안 계시면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 기록, 당시 8 학사의 역할 면면들 게시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고 해설을 해주어서 확실하게 알고 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이 일은 축제 기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상시 이루어지길 바란다. 축제 후 아쉬웠던 점이기도 하다.
두 번째 ⌜훈민정음 어제 서문⌟을 탁본하여 족자로 만들어가게 하여 벽에 붙여두고 어린아이들이 읽고 외움으로써 훈민정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두게 하였으면 좋겠다. 내가 어릴 때 어제서문을 잠시 배우고 외운 글이 나이 들어서도 가슴에 짠하게 남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깊은 애정을 바란다면 욕심일까?
세 번째 바램은 해설사 의복은 훈민정음 정신이 실려있었으면 좋겠다. 특별한 복장으로 즉 한복 식 긴 가운 등으로 저고리 동정이나 길게 내려뜨린 옷고름에도 가운 자락에도 훈민정음 글자들을 새겼으면 좋겠다.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세계 최고의 문자에 어울리는 고고하고 우아한 복장으로 훈민정음 해설을 하는 멋진 그 날을 꿈꾸면서 벌써 설레며 가슴이 뛴다.
하루빨리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해설사들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일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이 모두 훈민정음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되는 참으로 보람차고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