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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올바르게 알아야 문자 강국이 된다(전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권혁중 | 조회 516

 

훈민정음을 올바르게 알아야 문자 강국이 된다

 

권혁중(전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자를 가진 민족이라고 자랑한다. 특히 세종대왕께서 우리 글자를 만드셨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세종대왕께서 창조하신 글자를 대부분 국민들은 한글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글자는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이며, 지금 우리가 한글이라고 하는 우리 문자의 본래 이름이다. 이것이 1912년 일제시대에 주시경 선생이 위대한 글, 큰 글이라는 뜻으로 한글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종대왕께서는 왜 훈민정음을 창조하시게 되었을까?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기셨다. 그들 백성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이러한 딱한 사정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성군으로, 주체성 강한 혁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문은 남의 글이므로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더라도 매우 어색하여 뜻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그 밖의 다른 나라 글자들은 도저히 빌려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셨다. 특히 집현전에는 세종대왕의 새로운 글자 창작 정책을 도울 만한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아울러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 중국말의 통역을 길러야 했는데, 그들을 과학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소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 운학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 운학의 체계는 새 글자를 만들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종대왕은 1443(세종 25) 음력 12월에 세계 역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우리의 고유문자이며 표음문자인훈민정음을 만드셨고, 1446(세종 28)에 반포하셨다. 훈민정음은 17자의 자음과 11자의 모음인 28자로 구성되어 있다.

 

훈민정음의 의미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이다. 이때의 소리는 글자와 통한다. ‘바른이라는 꾸밈말을 붙인 이유는, 한자를 빌려 쓰는 것과 같은 구차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글을 암클이라는 이름도 쓰였으니, 이는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는 뜻이다. 선비가 쓸 만한 글은 되지 못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한글하나또는 의 뜻이니, 우리글을 언문이라 낮추어 부른 데 대하여, 훌륭한 우리말을 적는 글자라는 뜻으로 권위를 세워 준 이름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정음이라 부른 정신과 통한다 할 것이다.

 

인류의 참된 역사는 언어의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기록이 없는 시기는 역사 시기가 되지 못한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전의 우리나라에도 언어의 기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한자로 적은 기록들은 그 양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그것마저 기록 당시의 언어를 복원하기가 무척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는, 참된 우리 겨레의 역사 시대의 출발을 의미하는, 우리 겨레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언어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분명한 것은 훈민정음이 한글이고 한글이 훈민정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글날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일이나 반포일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인 훈민정음과 관련 되어 있는 날을 확실하게 기억해야 하고 이를 국가기념일로 정하는 일부터 추진해야 훈민정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며 실질적인 문자강국이 되는 초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