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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최고의 사랑, 훈민정음(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 종 | 조회 493

 

인류의 최고의 사랑, 훈민정음

김 종(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글은 나의 일용할 양식이다. 세상에 태어나 울음소리를 처음 냈을 때, 그 자리에서 들은 소리들이 나에게는 일용할 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글을 떼고 내가 하는 모든 말들, 내가 들은 모든 소리를 한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산에 가면 먼 길, 가까운 길, 돌아가는 길, 오르고 내리는 길, 만나서 반갑다 손잡는 길이 있다. 오가는 말도 고운 말, 예의 바른 말, 상스런 말, 욕설 등이 동일한 사람에게서 말의 여러 길이 나타난다. 어떤 길을 가야 한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갈까?

한글은 오늘도 멀리 보는 눈길이 되어 버선발로 뛰어나온 어머니의 사랑이고 그 사랑이 소실점이 될 때까지 우리를 사람 세상에 끌고 간다. 그리고는 젖을 물리고, 한가득 아기의 볼따구니를 웃음으로 바라보는 어미의 따뜻한 눈길이 된다. 그 눈길에는 촘촘한 사랑이 박음질되어 울타리로 세워진다. 한글은 까치밥이다. 텅 빈 대자연의 공간에서 한겨울 까치가 굶어죽지 않도록 남겨둔 눈물의 사랑이다. 한글은 홍시다.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를 먹이려고 부드럽게 몸을 녹인 홍시의 극진한 보시다. 한글은 홍어다. 삼복더위에도 알맞게 삭혀서 가난한 사람들의 입맛이 된 홍어의 알싸한 마음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퍼 올린 샘이 깊은 사랑이고 집현전 학자들의 두 손 모은 간절함이고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에의 사랑의 교본이다.

한글은 단군이고 배달민족이고 가득 우주를 채운 지구촌 사람들의 향기 그 자체다. 한글은 남실거리는 강이고 그늘 깊은 정자나무고 비를 품은 마파람이고 잘 여문 나락이고 품이 너른 평야다. 누구나 깃들여 탑을 쌓고 서로가 어우러져 손잡고 농사짓는 고향의 인심이다. 누구라도 한나절만 머리 싸매고 학습하면 모두의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훈민정음이 낳은 한글은 사람과 사람을 건네주는 징검다리다. 별과 별을 유등 띄운 샘이 깊은 사랑이다. 한글은 사랑의 모양에서 출발하여 각 글자를 발음하는 구강의 캐리커처를 의사소통의 원리로 빚은 등불이다.

누가 감히 그 같은 상상력을 넘어설 수 있으랴. 한글을 쓰는 사람들이 갖는 자긍심은 정확히 오백칠십육 년을 굽이친 사랑의 강물이다. 한글은 먹지 않아도 배부른 사랑의 양식이다. 소낙비 마을에서 보내온 무지개의 빛살로 하늘은 어느 때보다 휘황하다. 꽃잎은 떨어져도 열매는 반짝인다. 세상에는 기적만 기적이 아니다. 기적 아닌 기적도 얼마든지 있다. 그것이 바로 한글이다. 한글은 사소한 사람들의 담소이고 집에서 입는 편하디 편한 일상복이다. 막연하던 자리에서 우리는 한글이라는 기적을 만나 오늘을 살아갈 밥을 얻는다. 생각을 정리하고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메모해둔 것들을 하나하나 한글로 갈무리한다. 산전수전을 겪은 저 많은 메모들, 한바탕 타올라 잘 익은 밥이 되리라. 몸을 눕혀 앓는 소리를 내는 허리 휘고 옹이진 것들을 불러들이고 웃음 웃는 하회탈에 밥알갱이 발라가며 배부르게 한글의 밥을 먹이리라. 이글이글 타면서 다지고 덜어내고 덧대어가는 동안 사소한 것들도 제자리에서 소담히 꽃피우리라.

꺼져가던 불씨들이 세상을 밝히는 불꽃이 되리라. 제 몸에 불을 놓는 저 작고 가녀린 꽃송이에게 나는 무슨 눈길을 보낼 것인가. 내 몸을 아궁이 만들어 한글을 무지개로 구워 내리라.

이제 시대는 훈민정음(한글)의 산업화를 서두를 때다. 우리는 컴퓨터에서 디지털을 거쳐 AI시대에 접어들었다. 문자를 만드신 세종은 어떻게 600년 뒤의 일을 이리 명징하게 예측하셨을까? 훈민정음이 자랑스러운 것은 사랑으로 창제한 백성의 문자라는 점이다. 훈민정음은 지구촌에서 만든 사람과 만든 연대와 만든 원리와 반포일과 목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다. AI시대를 선도할 유일한 문자가 훈민정음(한글)이란 점 또한 널리 알려진 바다. 훈민정음(한글)이라야 AI와 완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자긍심 넘치는 일인가. 복합이 가능한 문자는 훈민정음(한글)이라는 것 또한 여러 자리에서 증명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글은 그 뛰어난 우수성과 유용성으로 하여 우리 민족을 먹여 살리는 재화벌이에도 성공할 것이다. 훈민정음(한글)은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지구촌 모두가 두루 일용할 사랑과 양식의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