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인간다운 삶과 휴머니즘의 진일보에 기여하였다.(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이상식 | 조회 488
훈민정음은 인간다운 삶과 휴머니즘의 진일보에 기여하였다
이상식(전 부산지방경찰청장)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교수 루터는 로마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의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자, 이에 항의하여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 개조의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다.
이보다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교황과 황제의 박해를 피해 바르트부르크에 피신해 있던 시기에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성서의 독일어 번역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를 이용한 성서의 대량 인쇄로 이어져, 성직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도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종교의 자유와 개인의 각성을 가져와 중세를 끝내고 근대의 문을 열었다.
언어란 이만큼 중요한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면 이보다 약 80년 전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 체계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훈민정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훈민정음은 사람들에게 하여금 감정과 생각을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표현·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이전보다 더 인간다운 삶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고 또 지금은 공기와 물의 존재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훈민정음 이전 시대에는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한자를 배우지 못한 평민들은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 외에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들에게는 서한이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었지만 한문으로 편지를 쓸 수 있는 평민들이 몇이나 되었겠나. 사랑하는 정인이나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답답함과 괴로움은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한자를 아는 양반이나 사대부들도 답답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문자로 아닌 한자로 어떻게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전달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훈민정음이 창제·반포되고 통용되자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평민들은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대부와 양반들도 한문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던 미세한 개인의 감정과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1453년(단종1년)에 궁녀가 언문 연애편지를 주고받다가 적발되어 혼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궁녀가 한문으로 연애편지를 보낼 수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한문으로 된 연애편지가 얼마나 와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안동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1586년), 사대부의 부인이 상중에 언문 소설을 읽다가 집안 어른에게 꾸지람을 당했다는 기록 등을 보면 양반이나 사대부 부녀자들 사이에서도 한글이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이유는 한문보다는 한글이 훨씬 감성과 생각을 표현하기가 쉬웠을 것이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아래 사설시조들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옛사람들의 감성이 그대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창 밖이 어른어른커늘 님만 여겨 펄떡 뛰어 뚝 나서보니
임은 아니 오고 으스름 달빛에 열구름 나를 속였구나
마초아 밤일세망정 행여 낮이런들 남 우일 뻔하여라
모시를 이리저리 삼아 두루 삼아 감삼다가
가다가 한가운데 뚝 끊어지었거늘 호치단순으로 흠빨며 감빨아
섬섬옥수로 두 끝 마주 잡아 비부쳐 이으리라 저 모시를
우리도 사랑 끊어져 갈 제 모시같이 이으리라
한문으로는 아무리 명문이라 한들 위 시조들처럼 생동감 있게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훈민정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언문 소설이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들 언문 소설의 주제는 권선징악 같은 전통 유교 윤리에 부합되는 것도 있었지만 남녀상열지사 같은 은밀한 개인적 욕망과 그 해소를 다룬 것들이 더 유행했다고 한다. 또 언문 소설을 빌려주는 오늘날의 서점과 같은 세책방도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니 이제 한글이 한문보다 일상생활에서 더 사용되는 형편에 이른 것이다.
언문 소설과 사설시조 등의 유행은 당시 유교 전통 윤리에 속박된 개인이 부분적으로나마 해방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서 개인으로서의 주체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발견과 자각은 인간성의 고양을 핵심으로 하는 휴머니즘의 확산을 가져왔다. 이러한 점은 서구에서 개인의 발견과 자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르네상스가 결국 종교개혁과 근세로의 이행을 촉진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훈민정음은 개인의 감정과 사상의 소통과 공유를 가능케 함으로써 더 인간다운 삶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휴머니즘의 확산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