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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시인)

홍강리 | 조회 457

 

훈민정음訓民正音

 

홍강리(시인, 국어교사)

 

보름달 뜨는 소리 들었느냐

목화꽃 벙그는 소리도 들었느냐

별 잦는 소리 또한 들었느냐

새벽을 거느려 오는 그 빛 보았느냐

남실거리는 시간의 그 머리칼 보았느냐

누리를 이끌어 담은 그 눈빛 보았느냐

물안개 피어오르는 살갗 만졌느냐

가을 평야 살진 젖가슴 만졌느냐

여름 산 파아란 힘줄 만졌느냐

세상의 소리, 세상의 형상,

세상의 온갖 마음을

예서 듣고 예서 보고 예서 느낄 수 있네

훈민정음

 

하늘이 낳고 땅이 길은 사람

흙의 주인이 되어

초목을 다스리고 짐승을 길들이고

물길을 여니

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뒤따라와

말과 짓을 시늉하매

음양은 헛됨이 없이 서로 주고받으며

아롱지는 오행 목화토금수

칠조가 귀를 틔워 궁상각치우

열두 달 줄이 우는 가야금 소리

누리를 촉촉이 적시네

훈민정음

 

왜란과 호란를 겪은 이후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매화 피었다는 꽃소식도 잠시

다시 피눈물에 젖은 남과 북,

침향처럼 땅과 나무와 냇물과 구름에 스며

상처에 새 살을 돋게 한

그 아픔과 환희 오롯이 드러낸

훈민정음

 

풀밭에 깔 뜯는

송아지 엄매소리 햇살처럼 빛나다가

물살 물고 나와 번득이는 은어 떼,

건반 위로 튀어 오르는 음악,

화가의 붓끝으로 눈뜨는 파랑새

날아올라라, 날아올라라

훈민정음

 

들꽃 흐드러진 밭둑도

산새 울음도 시로 피는 숲속도

불 밝은 서재가 되었느니

달빛 받아 목욕하는 전설,

이슬로 칼을 갈아 말 달리는 신화

그 오묘함 속에 집을 세운

한 채의 우주

훈민정음

 

이제 거칠 것이 있으랴,

막아서고 덜미 잡는 검은 손이 있으랴,

그 안에 품고 있던

큰 산, 긴 강을 보여주고

높은 폭포 다 쏟아내어 흐르라,

세상에 질펀하게 흐르라,

뉘 가슴이랄 것 없이 흥건하게 적셔

영원한 모국 대한민국을 넘어 흐르라,

그리하여 동방의 등촉으로

유럽을, 아메리카를, 아프리카를,

지상의 어느 외진 고샅이라도 밝혀

하늘의 소리.

사람의 맘,

땅의 형상을 다 드러내 보이시라.

훈민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