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탑 건립에 대한 제언㈜현석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장현석 | 조회 501
훈민정음탑 건립에 대한 제언
장현석 ㈜현석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훈민정음’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우리의 자존심이요 긍지 높은 문자다.
훈민정음, 즉 한글을 배우고 쓰며 성장해온 우리의 삶이야말로 엄청난 행운과 보람이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훈민정음은 인류 문자 사상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과학적인 글로 평가하고 있다.
‘훈민정음, 세종대왕, 대한민국, 위대한 겨레’를 함께 떠올리게 하는 어휘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조 1397년,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고 같은 해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21세에 즉위하여 32년간 재위하고 53세에 승하하신 임금이다.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위민정치, 과학 입국, 문화 치세, 이상 실현의 정치적 기틀을 마련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 찬란한 왕조였다. 1420년에 집현전을 설치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정치의 기반이 되는 법령 정비는 물론 의례제도(儀禮制度)를 가다듬고 방대한 편찬사업을 지속적으로 촉진하여 교육 문화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시기였다.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 기술의 발전, 의료 제약의 향상, 공평무사한 법제의 완비, 공병의 제정, 변방 수호의 안정화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하여 민본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했다. 이 가운데서도 그 으뜸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한글의 창제라 할 것이다.
이런 한글, 당시의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신미대사(信眉大師)는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던 혜각존자(慧覺尊者)로써 본관은 영동이고 속명은 수성(守省)이며, 호는 등곡(燈谷)이다. 복천암 월성 큰스님의 자료에 의하면 ‘속리산 복천사에 주석해 있던 신미대사는 세종대왕의 초빙을 받아 집현전에 나아갔다. 신미 선사는 범어에 능통하여 모음, 자음 소리글을 범서에서 착안하여 한글로 만들고 시험할 때 해인사에서 자경을 간인하여 법화경, 금강경, 반야심경 등의 토를 달아보고 번역도 하여 시험을 끝내고 1446년 9월 상달에 우리글을 훈민정음이라 반포하였다.’라고 일렀다. 신미대사는 세종께서 훈민정음 창제에 뜻을 두고 그를 부르기 전까지 복천사에 있었다.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할(祐國利世)’ 훈민정음 창제의 달빛은 복천의 물만큼 맑고 투명하게 이울기도 하고 가득 차 오르기도 했다. 퍼내도 마르지 않는 천지인 삼재의 오묘하고, 가늠할 수 없는 물줄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세종이 오래전부터 계획해 오고 있던 새로운 문자 창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수양대군을 복천사로 내려보내 임금의 뜻을 대사에게 전했다. 신미는 고려대장경을 통해 익힌 구결(口訣)의 비의(秘義)와 패엽경(貝葉經) 속의 범어(梵語) 주역의 삼재(三才:천지인)를 통합하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두(吏讀)와 삼재에 정통했던 외조부 이 행의 훈습이 세종을 만나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훈민정음 창제에 초석이 되었음에도 신미대사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역사 기록이 없음은 숭유억불의 체제에서 스님의 이름을 기록하지 못하였을 것이나, 복천사의 왕실 지원이나 간경도감의 설치 등 당시 정황으로 보아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에서는 훈민정음 탑 건립 조직위원회를 조직하여 문자 강국 대한민국인의 자긍심을 담는 훈민정음 탑 건립 범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인의 상징물인 프랑스 에펠탑, 미국 자유의 여신상, 대한민국은 훈민정음 탑을 건립하고자 함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건립 예정 부지는 세종대왕이 초정에 머물며 한글 창제를 마무리한 초정 행궁의 인근 초정리 산 48-5번지 일원으로 독지가인 나기정 전 청주시장님이 희사한 땅이다.
필자는 건축사이며 전통 건축을 전공한 문화재 실측기술자로서 훈민정음 탑 건립에 대한 기본계획의 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전체 배치의 구상은 출입구 좌측에 대형 주차장을 배치하고 주차장과 시설물 사이 완충공간에 만남의 광장을 설치함이 좋을 듯하다. 주차장 측면에 단지 관리를 위한 시설과 관람객의 편익을 위한 화장실, 휴게 매점을 전통 한식 양식으로 건립한다. 만남의 광장 측면에 화강석의 원주 높이 12m의 표면에 훈민정음을 디자인 글자로 새긴 훈민정음 기념물 배치가 바람직하다. 상징 메인 건축인 훈민정음 탑은 중앙 상부의 작은 돌기가 있는 혈의 부지를 계획하고 초입 광장에서 탑에 오르는 길에는 현재의 수목을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경사를 활용하여 산책 체험로를 개설한다. 체험로 측면에는 세계 문자 비림을 조성하도록 구상해 볼 수 있다. 세계 문자 비림을 모두 체험한 후 정점의 위치에 훈민정음 탑을 건립하여 세계 문자의 정점에 우리 한글 훈민정음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훈민정음 탑은 1층 면적을 108평(357㎡)으로 하여 서문 글자 수인 108자를 상징한다. 탑의 높이는 108m에 28층으로 구상하여 훈민정음 28자와 서문 글자 수인 108자를 상징하도록 구상하였다. 탑의 건축 구조 양식은 주요 구조는 철골구조에 외형은 훈민정음 제작 시기인 조선 시대의 목조 건축 양식으로 2익공 겹처마 팔각지붕으로 하여 한국의 목조 건축에 전통 단청을 입히도록 구상하였다. 훈민정음 탑 지하 1층에는 기계, 전기, 통신을 계획한다. 지상 1층부터 28층까지는 세종대왕이 이룩한 천문과학 학술 저서 등 모든 업적을 관람할 수 있는 세종 박물관을 비롯하여 세계의 문자 박물관을 계획하고 상부층에 세계의 특징 전통 음식점과 옥상층에 전망대를 배치 계획 구상하였다. 실 중앙에 코어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두고 일반 관람객은 모두 걸어서 올라가고 걸어서 내려오도록 계단을 분리 설치하여 전망대인 28층에 오르도록 계획 구상하였다. 108m의 높이를 힘들게 정상에 올라가서 세계 최고의 문자임을 세계의 만인이 체험할 수 있게 계획하였다. 훈민정음 탑 상부 위치에는 회음 벽을 설치하여 운곡의 서예로 훈민정음 글자 11,172자를 오석에 각자하여 건립한다. 진입로 좌측에는 당시 집현전의 기능을 수행하는 학술 연구기관으로 훈민정음 대학원 대학, 세종교육관, 세계 문자 연구소 등을 한국 전통 건축 양식으로 계획 배치한다. 본 단지 주변의 숲에는 기존 수목을 정비하고 한국 전통 재래 수종의 수목을 식재하고 체험 휴식 산책로인 세종 나들잇길을 조성한다.
훈민정음 탑과 세종대왕의 업적이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에 못지않은 세계인의 명품임을 자랑하고 세계인이 찾고 싶은 관광 명승지가 되도록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계획이 마침내 성사되어 세계인이 주목하는 청주 초정이 되기를 갈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