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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으로 주고받은 연모 편지(훈민정음기념사업회 기획처장)

홍수연 | 조회 519

 

훈민정음으로 주고받은 연모 편지

 

홍수연(훈민정음기념사업회 기획처장)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기 전까지 한자라는 문자만 사용해 왔던 우리는 한자와 정음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이중 문자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 스물 여덟 자가 창제 된 이후 조선시대 양반 계층의 사대부들의 소통에는 한자가 주로 사용되었고, 세종께서 어엿비 여겼던 중류층 이하 백성들과 대부분의 여성들은 언문을 배워 쓸 수 있는 것이 보편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자만 써왔던 조선시대 상류층 남성들도 점차 훈민정음의 활용성과 용이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어머니, 아내, 딸 등과 편지를 주고받는 등 사용범위가 점점 넓혀져갔습니다.

 

조선시대 여성은 극히 일부의 여인들을 제외하고는 문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비나 대비들은 물론이고 궁녀에 이르는 여성들은 언문으로 문서를 주고받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왕실에서 왕비나 대비들은 한문을 알더라도 왕이나 신하들과 언문으로 소통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전 윤 씨를 폐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대비로부터의 교서도 언문으로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궁녀들은 한 번 궁으로 들어오면 평생 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연애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로운 궁녀들이 별감 등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연애편지를 쓰다가 들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연애편지가 발각된 이유 하나로 궁녀들은 관비가 되고, 별감은 관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형을 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애틋한 감정을 주고받은 편지가 사형을 당할 죄에 해당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남매지간에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편지를 쓸 수 있게도 하였습니다.

 

국립청주박물관에는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이라는 언문 편지 모음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효종(1619~1659) 임금의 셋째 딸 숙명공주(1640~1699)가 주고받은 언문 편지를 모아서 엮은 것입니다.

숙명공주의 어머니 인선왕후가 보낸 편지가 54통으로 가장 많고 효종, 현종, 장렬왕후 등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언문 편지 모음집을 통해서 17세기의 언문 필체로 적힌 왕실 가족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보는 느낌입니다.

 

너는 시집에 가 (정성을) 바친다고는 하거니와 어찌 고양이만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 걸렸거든 약이나 하여 먹어라.

 

이 글속에는 고양이만 안고 있지 말라고 질책하면서도, 이른 나이에 시집간 딸에 대한 아버지의 투박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욕심 없는 딸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이번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어제 너의 언니는 물론 동생 숙휘까지 패물을 많이 가졌는데 네 몫은 없으니,

너는 그사이만 하여도 안 좋은 일이 많으니 내 마음이 아파서 적는다.

네 몫의 것은 아무런 악을 쓰더라도 부디 다 찾아라.

 

아버지 효종이 내린 어떤 답장 글에는 딸 숙명공주가 보낸 편지의 빈 여백에 적혀 있는 것을 자료를 통해 검소한 생활을 한 효종의 성품도 엿볼 수 있지만, 시집간 딸이 보내온 숙명공주의 편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빈 여백을 활용하여 답 글을 써내려간 친정아버지의 애틋한 애정을 고스란히 느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공주에게 돌아온 편지에는 고양이를 좋아한 숙명 공주의 단정한 글씨체와 버럭 하는 부왕 효종의 애정 어린 글씨가 나란히 남아있습니다.

 

숙명공주에게 보내온 현종의 언문 편지에서는 왠지 더욱 더 반가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밤사이 평안하셨는지요?

오늘은 정이 담긴 편지도 못 얻어 보니 (아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이 홍귤 일곱 개가 지극히 적고 보잘것없사오나 정으로 모은 것이라 보내오니

적다마시고 웃으며 잡수십시오.

 

누나인 숙명공주가 받은 귤 봉지에 담겨 온 편지에는 당시에 귀했던 일곱 개의 귤을 보내는 한 살 아래 동생 현종의 따스한 마음도 실려 있습니다. 제가 보내드린 귤이 일곱 개 밖에 안 되어 보잘것없지만 수량이 적다고 타박하지 마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드시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일곱 개의 귤이라도 누이에게 보내는 동생과 귤을 받아 본 공주는 함께 동봉된 편지를 읽으면서 한 번 더 즐거워졌을 왕실 남매의 다정함이 묻어나오는 언문 편지입니다.

600여 년 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어떻게 전달하였을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훈민정음이 없었다면 한자로 편지를 주고받았겠지만 우리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