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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에서 나타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문화해설사)

신완호 | 조회 504

 

훈민정음에서 나타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신완호(문화해설사, 훈민정음 해설사)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는 세계3대 광천수와 함께 세종대왕이 눈병치료를 위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대왕이 초수에 행궁을 짓고 머문 것은 1444(세종26) 32부터 52일까지 60일간 머무르셨고, 같은 해 윤7 19일부터 922일까지 61일 총 121일간 초수 행궁에 머무르시며 한글창제와 연구를 하시며 국정을 살핀 것으로 나타난다. 세종대왕은 316개월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정 각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대왕이 남긴 업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다. 훈민정음은 역사적 무게와 가치에 있어서 세종대왕이 이룬 나머지 업적 전체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전 세계에는 7천여 개가 넘는 언어들이 존재한다지만 자기만의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에게 훈민정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삼국시대에 유입되어 고려,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한자를 쓰거나 만국공통어인 영어를 쓰고 있지 않을까? 훈민정음(한글)은 우리 언어만을 위한 글자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은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삶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과학적이고 쉽게 배울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든 것으로, 백성들이 글자를 알아야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로울 것이라 생각하시어, 백성들이 글자를 알면 학문을 전하는 것은 물론 왕이 어떤 일을 하려는지 쉽게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 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 작업을 집현전 학사 최항, 박팽년, 신숙주, 이개 등 젊은 학사들과 세자와 수양 대군, 안평 대군, 정의공주도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자 예전부터 한문을 중요하게 여기던 선비들이 세종대왕의 뜻에 반대가 심했다.전하, 우리가 중국의 학문을 따르고 있는 이상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며,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이옵니다. 백성들이 쓰기 쉬운 문자라면 이미 신라 시대에 설총이란 학자가 정리한 이두가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문자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며 반대를 하자, 부제학 최만리 등 신하들을 향해 너희가

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말해보라며 준열하게 꾸짖을 수 있었던 것도 세종대왕은 그만큼 언어학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은 글자를 백성에게 알릴 방법을 찾는 데 몰두했다. 특히 중국을 수차례 다녀온 성삼문이나 밤낮없이 연구에 온 힘을 기울인 신숙주 등 집현전 학사들의 노력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에 훈민정음은 우리 임금께서 친히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고 어렵게

만들어진 새로운 글자가 사용하기에 편리한지, 실제로 소리를 기록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집현전 학자들에게 연구하게 했고, 28개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1446년에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었다.

훈민정음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따서 초성자는 모두 17자로, 어금닛소리는 은 혀 뿌리가 목을 막는 모양이며, 혓소리 은 혀가 윗 잇모양에 붙는 모양이고, 입술소리 은 입 모양이고, 잇소리 은 이 모양이며, 목구멍소리 은 목구멍을 본떴다. 이런 방법으로 자음을 만들었고 아, , , 여 같은 모음은 하늘 사람 땅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으며, 이 창제원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찾을 수 있다. 오행의 기본 원리로 만든 자음은 , , , , 이며, 해례본의 모음 11자의 창제당시 순서는 ·, , , , , , , , , , 이다.

 

훈민정음의 한자를 풀이하면 가르칠 훈, 백성 민, 발르 정, 소리 음, 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 라는 뜻으로, 백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자에 담아 말 하기를 기대했던 세종대왕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더라,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쉼게 익혀 나날이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를 밝히셨다.

훈민정음 서문에 나타나는 창제정신은

첫째 자주정신 : 중국한자와 우리말의 불일치에서 오는 의사소통 문제

둘째 애민정신 : 기회균등문제, 지식의 계급 타파, 백성들의 의사소통 문제, 애민정신

셋째 실용적 문화주의 : 어려운 한자가 실용적이지 못함, 훈민정음을 날마다 사용

넷째 사법 공평주의 : 송사에 있어 벼슬아치보다 일반 백성의 한계를 인식

 

우리의 문자가 1445년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되었다. 훈민정음으로 쓴 작품으로 조선을 세우기까지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의 사적을 중국 고사에 비유하여 공적을 기리어 지은 125105책의 용비어천가가 탄생 되었다.

세종대왕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 마인드와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인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며, 그것이 국가의 공식 언어로 빠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상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 훈민정음의 창제의 원리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훈민정음이 반포된지 올해로 576년이 되는 해로 한글이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되어 세계화에 진격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