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과 군(軍)(대한민국육군 제15보병사단장)
김경중 | 조회 509
훈민정음과 군(軍)
대한민국육군 제15보병사단장 소장 김경중
2021년, 탈레반은 30만 명에 달하는 정부군을 물리치고 넉 달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미국이 20년 넘게 1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 가장 현대적이고 정교한 장비를 가진 정부군이 무기력하게 탈레반에게 밀려난 모습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렇게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커다란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비문해율(문맹률)이다. 놀랍게도 미군에서 훈련 시킨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중 불과 5% 남짓만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읽기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며, 대부분 숫자 세는 법과 색깔까지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비문해율이 군(軍)과 큰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나는 훈민정음이 군(軍)의 영역에 기여한 바, 그리고 군인으로서 훈민정음에 기여할 바를 생각해보았다.
전쟁은 무기체계만으로 승리할 수 없다. 무기체계를 운용하기 위해 교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교리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이해하고 운용하며 창의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전쟁은 군(軍)만 수행하는 것이 아닌 국가 총력전이므로 국가의 전 영역을 통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군에게 숫자와 색깔까지 가르치고 훈련시켜 전투력을 창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며, 많은 한계점이 노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 국군의 상황은 아프가니스탄군과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의 문해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는 세종대왕님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덕분이다. 이로 인해 군(軍)은 다양한 정보와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교리를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현재는 세계 최강인 미군이 포함된 한미연합부대를 미국과 협력하여 우리 군이 지휘하기 위해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한미연합사단도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초급부사관들까지 교리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문해율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합작전에서는 상호 국가의 문화 또한 이해해야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우리의 문해율이 높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군의 지휘와 상황 조치는 어떠했을까? 군인에게 문자는 소통을 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6․25전쟁 당시 우리 군은 한자 위주로 명령을 하달했지만 현재는 한국어로 하달하고 있다. 이 덕분에 지휘관부터 말단 병사까지 더욱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부대의 가장 최소 단위인 분대의 책임 지역이 더욱 확장되고, 도시지역 작전 등에서 분대 단위 전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한국어를 바탕으로 무전과 메시지를 통해 소통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가 싸워 이기는 강한 군대를 양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군인은 누구와 싸워야 하고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싸울 대상은 직접적인 적과 향후 생길 수 있는 잠재적인 적이 있다. 이러한 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군인은 평소 잠재적인 적까지 생각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변화되는 상황과 관계없이 싸워야 할 대상을 식별하는데 가장 명확한 기준은 바로 국가의 얼(魂)이다. 국가의 얼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위해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의 얼을 교육해야 한다. 국가의 얼은 우리 국가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내면화함으로써 자긍심을 가질 때 만들어진다. 세계가 최고라고 인정하는 훈민정음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도 국가의 얼을 형성할 수 있는 것으로 교육이 필요하다.
싸우는 이유 또한 중요하다. 헌법 제9조에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와 같이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인식하고 계승하기 위한 여건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창씨개명을 강요당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말모이⟫는 학교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에 맞서 목숨을 걸고 한국어를 살리고자 투쟁하는 선열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보호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군(軍)이 안전보장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한때 훈민정음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제는 세계유산이 된 훈민정음을 지키기 위해 더욱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군(軍)은 민족문화의 계승 및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거 비문해율이 높았던 시절, 정부에서 한글 교육을 활성화하였을 때 군에서도 그에 발맞춰 장병들의 한글 교육을 실시해 문해율 향상에 기여한 바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훈민정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세계가 인정하는 유네스코 유산인 자랑스러운 훈민정음의 가치를 전 장병에게 알리어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있는 공기 같은 우리글의 고마움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국가의 얼을 면면히 계승하는데 군(軍)도 반드시 기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훈민정음의 창제이념에는 홍익인간의 이념과 애민정신이 있었다. 세종대왕께서 당시에는 조선의 백성을 생각하셨겠지만, 지금 이렇게 세계화에 발맞춰 훈민정음이 세계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보면 무척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84개국 244개소에 ‘세종학당’을 설치하고, ‘온라인 세종학당’도 운영하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군(軍) 역시 세계평화를 위해 평화유지군(PKO)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어를 교육하고 있다. 군(軍)은 앞으로도 평화 유지 활동 간 더욱 활발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세계인 속의 훈민정음이 되도록 많은 힘을 쏟아 훈민정음의 세계화에 큰 보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종대왕님께 감사드리며, 이미 군(軍)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훈민정음을 잘 지키고 사랑하며 세계로 확산하는데 기여하는 군(軍)이 되기를 소망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