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아름답게, 인류를 평화롭게 할 훈민정음(사)세계문자서예협회 이사장)
김동연 | 조회 395
세계를 아름답게, 인류를 평화롭게 할 훈민정음
운곡 김 동 연(사)세계문자서예협회 이사장, 서예가)
세계 어디를 가나 ‘한류’를 상징하는 기호로 로마자 ‘K’가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고 ‘K’를 연호하는 함성이 메아리치는 감동의 현장을 경험하게 된다. 가슴이 벅찰 수밖에 없다. ‘k’는 KOREA다. 5천 년의 세월과 문화, 반만년의 인물과 업적이 아직도 살아서 생동하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의 선도국이요, 문명국이다. 음악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의료에서, 뷰티에서, 첨단 기술에서, 선박에서, 자동차에서는 물론, 이 밖의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휩쓰는 ‘k바람’은 가히 폭풍적이다. 모든 일에는 결과를 있게 한 원인이 있는 법, 그 원인은 훈민정음 즉, 한글이다.
한글은 실용의 문자요 무한한 대상과의 교감의 문자다. 생물체와는 물론 무생물체와도 교감할 수 있는 문자인 훈민정음, 그 한글살이로 성장하여 영감을 키우고 다지고 높여 온 우리는 그 무엇과도 막힘이 없다. 다 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이 손을 대면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 그것이 ‘K바람’의 진원이다.
지구상에는 76억 4천만 명의 사람이 230여 나라를 만들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많은 나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면서 고유의 제 나라 말씨와 제 나라 글자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 종족은 얼마나 될까. 이 화두를 스스로에 던지는 순간 캄캄한 광야에 동녘이 떠오르듯 환희의 빛이 넘치는 까닭을 알 것만 같다. 역시 훈민정음 즉 한글이 그 까닭이다. 문자가 창제되고 그 창제된 문자의 창제 동기와 운용을 해설해 놓은 글이 세상에 한글 말고 또 있을까.
그들이 ‘중화 문명’의 초석이라 자랑하는 중국어는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가. 복희가 황하에서 얻은 그림, 하(夏)나라 임금 우(禹)가 낙수에서 얻은 글을 종합하여 만들었다는 하도낙서기원설(河圖洛書起源說), 고대 중국의 왕 창힐(倉頡)이 3천 년 전에 만들었다는 갑자기원설(甲子起源說) 말고도 결승기원설(結繩起源說), 조수기원설(鳥獸起源說) 중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다 못 익힌다는 문자 한문은 진정 언중의 문자인가. 그 문장 속에 자연의 소리를 담을 수 있는가. 인간과 조수의 희로애락 애 오 욕의 감정을 절반만큼이라도 드러내 보일 수 있는가. 문자로서 응당 대답해야 할 의문은 한두 개가 아닌데 대답은 미궁 속에 있을 뿐이다.
또 세계인의 공통어로 대우받으면서 인구의 1/3가량인 20억 인구의 언어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영어는 어떤가. 정체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문자다. 그리스문자, 로마자 등 구미 언어의 표기에 쓰는 문자를 통틀어 알파벳(Alpabet)이라 한다. 앵글족이 사용한 고대영어 앵글리쉬(Aenglise)에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어휘가 더해져서 오늘의 모습을 드러낸 문자다. 성서의 보급으로 널리 전파되고 영국인의 신대륙 진출로 급속히 세력을 얻은 영어는 A부터 Z까지 26개의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인도유럽어, 게르만어, 서게르만어 등 여럿의 이복동생들을 거느리고 있는 언어다. 단일한 언어가 아니라 알파벳의 교잡종 언어다. 앵글족, 색슨족, 쥬트족의 말씨가 이합집산한 언어다. 이는, 언어의 위상을 논할 때 한글과 나란히 놓을 수 없는 명확한 이유다.
우리 문자 한글은 예의 앞엣것들과는 그 태생이 다르다. 1446년에 만든이 세종에 의해 반포되고 어제 서문과 창제 실무자의 한 사람인 정인지의 후서, 그리고 문자 운용의 해설까지 명확하게 밝혀 있다. 특히 어제 서문에는 한자 원문 54자, 언해문 108자로 되어 있다. 이는 불교의 법수(法數)를 당겨온 것이다.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의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고 불타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불심을 축자역(逐字譯)으로 반영한 묘안이다. 문자 속에 인간이 있고, 문장 속에 자연이 살고, 문단 속에 사회가 존재함을 밝혔으니 여타의 그 무엇인들 우리 문자 한글보다 더 절묘함이 있을까. 이는 한글과 한자를 쓰는 일로 평생을 보내면서 깨우친 터득이다.
유년시절부터 예쁜 글씨, 바른 글씨, 높은 글씨를 소망하면서 소년기를 꿈으로 보냈고 청년기를 의지로 인내했다. 장년기를 서예 예술에 대하여 고초로 관조했으며 노년기를 맞은 이 시점에서는 체념인 듯 달관인 듯 애매하게 종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비로소 찾아내 얻은 것이 훈민정음 11,172자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듯하다. 우연은 아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 번개 치는 여름을 보내고 무서리 내리는 가을을 맞아서야 겨우 갈무리한 결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머언 먼 젊음을 아픔과 고난 속에서 보내고 이제야 돌아와 겨울 앞에 선 기분이다. 모란과 국화는 김영랑과 서정주의 희망이요 보람이요 이상이었던 것처럼 지금 이루어낸 훈민정음 글자본은 반드시 맺어놓고 떠나야 할 숙명 같은 결론이었다.
우리말이 불러낼 수 있는 글자 모두를 한자리에 수용하고 보니 욕심이 생긴다. 글씨의 입체미를 살리고 싶다는 욕심이다. 곧 서각이다. 글씨를 돌에 새겨 간직하고 감상하는 석각 비림이나 목각 작품은 흔히 있다. 그러나 제3의 오브제를 활용, 예술적 형상화를 통한 서각은 본 적이 없다. 그에 대하여 심도 있는 관심을 기울여 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허영일까. 이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 했으니 터무니없다 하기에는 섣부른 예단 같기에 새로운 설계를 도모해 보겠다. 자신을 위한 노욕이 아니라 길러준 이 땅을 위한 마지막 투자인 셈이다.
이젠 내일을 위한 꿈을 꾸고 그 꿈을 노래하고 싶다. 고단한 나그네가 길가의 정자에 앉아 목을 축이듯, 훈민정음 창제의 정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정리 행궁 주변에 훈민정음 탑이 하늘에 닿게 되는 꿈, 문자공원과 문자박물관이 땅을 덮어 비단처럼 고운 꽃을 피워내는 꿈, 그 아름다운 자태는 문화도시 청주의 위용을, 문명국가 한국의 위세를 드러낼 것으로 기대되는 꿈, 바로 이런 꿈을 꾸면서 찬란하게 타오르는 저녁놀의 장엄함을 노래하고 싶다. 지금 부르고 싶은 이 노래는 훗날 탑이 되고 궁전이 되고 박물관이 되고 지구상의 언어들이 한자리에 모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공원이 될 것이다. 세계의 언어가 한국의 청주로, 청주의 노래가 지구의 언덕 위로 바람처럼 불어갈 것이다. 이는 이 땅에 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위대한 선조들이 내려준 복이다. 평생 쓴 글씨를 바치고 훈민정음 낱자 11,172자를 완성한 것은 이 땅이 받아야 할 더 큰 복을 위해 비로소 작은 일 하나를 마무리했다는 기쁨도 무한하다.
세계를 아름답게, 인류를 평화롭게 이끌어 갈 아아! 우리의 훈민정음, 세계인이 사랑하고 극찬하는 우리의 한글, 현재 지구상에서 우리의 한글을 쓰고 있는 8,250만 명에게 하늘의 축복이 내리고 땅의 번영이 흐드러지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