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 명예교수 이상면 박사와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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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6일 서울대학교 교수회관 호암홀에서 새 용산 신문 김동영 회장의 초청으로 서울대학교 법대 명예교수인 이상면 박사와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이하 ‘훈정회’) 이사장 박재성 박사가 약 2시간 동안 오찬을 겸해, 훈민정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상면 박사는 훈정회가 목적사업으로 추진하는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 설립추진위원회 설립추진위원장’으로 위촉되었으며, 훈정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공익법인(제2021-0007호)으로 2021년 2월 25일 설립되었다. 대담 내용을 정리한다.
<대담 : 김동영 새 용산 신문발행인>
이상면 박사> 반갑습니다.
박재성 이사장> 존경하는 박사님을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박사님께 올해 1월 10일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 설립추진위원장으로 모시고 싶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표했을 때, 망설임 없이 흔쾌하게 위촉을 수락해 주셨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신 박사님을 모시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은 있었지만, 너무나 뜻밖에 바로 수락해 주시니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은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진으로 남아있어서, 오늘 박사님을 뵈러 오면서 꼭 여쭤보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상면 박사> 아! 그랬습니까? 하하. 그럼 일부러라도 사양할 걸 그랬나 봅니다. <함께 파안대소> 사실 오늘 대담 자리를 마련한 김동영 회장으로부터 작년 12월경 박 이사장이 훈정회를 이끌고 있다는 소개를 받았을 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나서서 해도 쉽지 않을 훈민정음 기념탑을 프랑스의 에펠탑과 같이 세계적인 거대한 탑으로 세우려 한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재성 이사장> 그렇습니다. 한문학을 전공한 제가 세계적인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을 기념하는 탑이 국내에 단 한 기도 없다는 것을 통감하고 훈민정음 기념탑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한 후 2020년 11월 13일 국회 도서관에서 ‘훈민정음 기념탑 건립조직위원회’ 발족식을 할 때까지만 해도 주위 사람들은 무모한 일에 나섰다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에게 “지금 당신들은 내게 어째서 이 일을 하느냐고 묻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어떻게 이 일을 했느냐?”고 묻게 할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습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하였지만, 한문책만 읽어온 서생으로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긴 여정의 출발이었습니다.
이상면 박사> 김동영 회장님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작년 12월 27일 용인시에 있는 훈정회를 방문했을 때의 첫인상은, 정말 훈민정음 기념탑을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초에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겠다면서 대뜸 ‘설립추진위원장’ 위촉을 승낙해 달라고 할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였지만, 평생을 교육자로서 살아온 제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망설임 없이 수락하였던 것입니다.
박재성 이사장> 제가 박사님께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 설립추진위원장으로 모셔야겠다고 결심했던 계기는 박사님께서 처음 훈정회를 방문하셨을 때 제게 선물해 주신 『찔레꽃 피는 언덕』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특이했기 때문인데, 이 책을 집필하신 동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상면 박사> 『찔레꽃 피는 언덕』을 쓰게 된 계기는 10년 전 교육감 재선거 때 선거운동을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곳에 어떤 글이 올라오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오랜 날, 까맣게 잊고 살아왔는데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최근에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사퇴하신 분이 학교 시절에 영어를 가르쳐 주신 그 선생님과 이름이 같아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찾았더니 경기고를 나오신 것으로 보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졸업 후에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왔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일 인당 평균 소득이 8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 서울의 학생들이 정규교육을 받고 있었던 반면, 시골의 가정들은 형편이 넉넉지 않아 학교보다 집안일 돕는 것을 당연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해 낙심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제가 본 것은 가난하여 중학교조차 진학할 수 없는 마을 소년·소녀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지방의 큰 유지인 변 주사가 미군 간부와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분쟁이 깊어진 사건을 학교에서 배운 영어 실력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저는 ‘교육’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변 주사와 미군 간부 이스트 우드의 도움으로 ‘흙집 학교’를 세우고 ‘가덕 중학교’로 확장했던 사연을 소설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해서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박재성 이사장> 그렇다면 앞서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학생 때문에 『찔레꽃 피는 언덕』이 출판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사님께서는 그 학생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이상면박사> 글을 올린 그 학생은 ‘흙집 학교’의 첫 제자였습니다. 경기고 졸업 후, 충북 청원군 가덕면 수곡리에 가덕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농촌 교육 운동을 하였는데, 그때 펼친 농촌의 교육으로 인해 그 시골 소녀는 또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박재성 이사장> 박사님께서 서울대에서 30년 동안 가르친 학생들도 소중하지만, 젊은 날 가르쳤던 제자들 역시 늘 마음속에 소중한 학생들로 간직해 오셨다는 말씀을 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제자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왔던 교육에 대한 원칙과 철학을 펼쳐보려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 시절의 이력이 바탕이 되었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음을 여러 곳에 밝혔다. 선거가 끝나자 그 옛날 ‘흙집 학교’의 제자들이 하나둘 그를 찾아왔다. 그들과 다시 웃음꽃 피우며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이 소설에 잊힐 뻔했던 소중한 기억을 재구성해주는 데 크게 일조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박재성 이사장> 박사님과 대담하기로 약속을 한 후 인터넷에서 박사님의 경력을 검색해보았는데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에 근무하시다가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하여 법학박사(SJD) 학위를 받고 미국 국무부 특별 법률고문을 지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박사님 스스로 소개하고 싶은 경력이 있으면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면박사> 저는 1982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30년을 재직하면서 국제하천 위원회(ICOLD) 위원장, 아셈(ASEM) 인권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타이완 정치대학에서 객원교수를 하며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교육개혁 자문역, 미국 국제법학회 국제법교육위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만, ‘가덕중학교’를 설립하고 농촌 교육 운동을 펼치기 위해 취득한 영어, 국어, 독어 중고등학교 교원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재성 이사장> 말씀하신 것처럼, 박사님께서는 서울대학교 법대 명예교수이시기도 하지만, 농촌 교육 운동을 펼치시면서 직접 ‘가덕중학교’를 설립하신 경험을 갖고 계시기에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가장 적임자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상면 박사> 감사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수락하였던 것입니다. 박 이사장이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이심전심이었던 것은, 창제자와 창제연도는 물론이고 창제원리까지 밝혀진 문자는 세계의 모든 문자를 통틀어서 훈민정음이 유일무이한 문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대한 훈민정음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박재성 이사장> 그렇습니다.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시기 전 병환을 치료하시기 위해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 행차하시어 60여 일간 머무셨다는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근거로 볼 때 단순히 병환을 치료하기 위한 행차보다는 훈민정음을 반포하시기 전 막바지 탈고를 위해 반대를 일삼는 신하들을 피해 집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훈정회는 청주시를 훈민정음 탑 건립 최적지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라는 격언처럼, 청주시장을 역임하셨던 나기정 세계직지문화협회 회장께서 선뜻 선산 5,000여 평을 훈민정음 탑과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 부지로 쾌척하셨습니다.
이상면 박사>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하였습니다. 제 고향 청주에 세계적인 문자 훈민정음을 기념하는 탑과 교육기관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에 동참하기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업은 몇몇 사람의 뜻도 중요하지만, 범국민적으로 대한민국의 문화 콘텐츠 발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성 이사장> 네, 박사님!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훈민정음 관련 기념사업은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국가가 나서준다면 저는 언제든지 이사장의 직분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상면 박사>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저도 힘닿는 데까지 훈민정음 대학원대학교 설립은 물론이고, 훈민정음 기념탑이 완공될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